"한국인 DNA엔 노래가 없다" 인성제로인 핀커스 주커만 Pinchas Zukerman은 어떤 인물?

세계적 바이올린 거장이라는 핀커스 주커만이 줄리아드 음대수업에서 연주마친 학생에게 

"한국인 DNA에는 노래가 없다" 고 악평했다. 

 

학생이 '일본계'라고 답하자 그는 

"일본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무식한 놈의 인종차별 발언. 우리 민족은 고대부터 노래와 춤의 DNA가 면면히 흐르는 민족이다.

 

 

 

 

중국인에 대해선 이렇게 말하는 일도 있었다.

"중국인 여러분은 메트로놈(박자 측정 기구)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단지 빠르고 시끄럽게 연주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빠르고 시끄러우면 최고인 줄 아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주커만이 1967년 레번트릿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 옆에 함께 서 있었던 즉 공동 우승을 했던 사람, 한국이 낳은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이다.

지금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에서 '버터'로 7주째 1위를 하고 있는 가수도 바로 한국인.

 

 

사진 출처 : https://issuu.com/rpoonline/docs/pinchas_pamphlet

 

 

핀커스 주커만

Pinchas Zukerman, 히브리어 פנחס צוקרמן

 

 

 

● 1948.07.16. 출생. 이스라엘 출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리스트

● 8살. 텔 아비브 음악 학교에서 헝가리 출신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Ilona Feher를 사사

● 캐나다 오타와의 국립 예술 센터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 1998년 4월부터 활동하면서 지휘자로도 그 명성을 높이고 있다.

● 맨하탄 음대 - '핀커스 주커만 연주자 과정' 최고 책임자
● 이스라엘 Ilona Feher Music Center - 설립자 겸 음악 감독
● 밀워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 상임 연주자

● 악기 : 주커만은 1742년산 "두쉬킨" 과르네리 델 제수 바이올린을 사용하고 있다.

 

 

수상 경력


● 1966년 Young Concert Artists International Auditions
● 1967년 레벤트리 국제 콩쿨 수상
● 그래미 어워드 - 최고의 실내악 연주 부문:
● 이자크 펄만 & 핀커스 주커만 -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음악(모스코프스키: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쇼스타코비치: 듀엣/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1981)
● King Solomon 어워드
● 국립 예술 메달
● 1983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수여
● 아이작 스턴 탁월한 예술가 상
● The International Center in New York's Award of Excellence 수상

 

 

1961. 이스라엘을 방문중이던 스페인 출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 러시아 출신의 바이올린 대가 아이작 스턴은 어린 주커만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그의 연주에 감명받은 스턴은 10대 소년인 주커만의 음악 교육의 방향을 지도해주었다.

 

1962. 아이작 스턴과 헬렌 루빈스타인, 그리고 미국-이스라엘 문화 재단의 후원으로 주커만은 미국 줄리어드 음악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교육자 중 한 명인 이반 갈라미언의 문하에 들어가게 된다.

 

1903. 이란에서 태어났고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수학한 갈라미언은 주커만에게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가르쳤다. 줄리어드에서 공부하는 동안, 주커만은 피아니스트 유진 이스토민의 부모님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예술 고등학교와 일반 고등학교를 모두 다녔다.

1967. 제 25회 레벤트리 국제 콩쿨에서 정경화와 공동 우승한 주커만은 이후 콩쿨 우승과 건강 문제로 연주를 할 수 없었던 스턴을 대신하여 몇 차례 협연하면서 전문 연주자로의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1980. 주커만은 세인트 폴 챔버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에 취임해 이후 7년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된다. 세인트 폴 기간에, 그는 악단의 규모를 키우고 지역 연주회의 유료 관객을 3배로 끌어올렸으며 오케스트라가 상주할 전용 콘서트 홀인 오드웨이 극장(Ordway Theatre)를 건립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는 주요 음반사와 여덟 장의 음반을 발매했고 미국과 중남미에 걸친 장기 순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세인트 폴에서의 주요 관심사는 지휘였지만, 주커만은 종종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고 악장 자격으로 연주를 하며 전문 솔리스트의 경력도 포기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

주커만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며 솔로 연주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는 또한 세계적으로 명성을 자자하게 떨친 아이작 스턴이나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만, 첼리스트 랄프 커쉬바움, 피아니스트 예핌 브롱프만,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 플루티스트 장피에르 람팔, 그리고 과르네리 현악 사중주단과 클리블랜드 현악 사중주단과의 함께 무대에서 연주하며 협업을 진행했다.


2002년도까지 100장이 넘는 음반을 발매

2001년까지 그 중 21장의 음반이 그래미 어워드의 후보에 선정되었고 2장이 수상 - 최우수 실내악 연주 부문(1980년)과 무반주 솔로 클래식 연주 부문(1981년) - 했다. 그 중 주목할만한 음반을 소개하자면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한 LSO와 협연한 브람스 이중 협주곡과 베토벤 삼중 협주곡(첼로 : 랄프 커쉬바움, 피아노 : 존 브라우닝) 음반(1998년 BMG 클래식/RCA Victor Red Seal 발매)이 있다. BMG에서 발표한 다른 음반들은 피아니스트 Marc Neikrug와 함께 녹음한 베토벤과 브람스, 모짜르트, 슈만의 모든 '바이올린/피아노'와 '비올라/피아노' 작품집이 있다. Decca에서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와 첼리스트 린 하렐, 그리고 주커만의 연주로 프란츠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를 녹음했다. 주커만의 초기 음반들은 Angel, CBS, 도이치 그라모폰, 런던, 필립스 등에서 출시되기도 했다.

 

 

사생활


그는 다니엘 바렌보임, 이자크 펄만과 막역한 사이이다.

● 첫 번째 부인 : 소설가 Eugenia Zukerman (1968-1983) 이혼 - 자녀로는 Arianna(오페라 가수)와 Natalia(블루스/포크 뮤지션)이 있음.
● 두 번째 부인 : 배우 튜즈데이 웰드 (1985-1998) 이혼, 한 명의 자녀
● 세 번째 부인 : Amanda Forsyth (2004 - 현재)

 

 

↓바이올린 거장 주커만 "한국인 DNA에 예술성 없어" 막말 ⓒ2021.07.14.MBC 영상갈무리

사업자 정보 표시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