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 트리니티 실험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이 세계 최초로 핵실험을 했다.

 

 

↓Trinity Atomic Test complete takes. 9140미터에서 촬영한 핵실험 당시의 현장 영상

 

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
이제 우린 다 개새끼들이야.(케네스 베인브리지. 첫 원폭실험 후 자괴감에 휩싸이며 한 말)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해)

 

위 실험은 미국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핵실험.

당연히 실험 당시에는 군사기밀이였으며 대중에 공개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맨해튼 계획의 성공과 함께 원자력 시대의 개막을 알린 사건.

Trinity는 삼위일체를 뜻한다.

 

엄청난 힘을 가진 핵분열을 인간이 마음대로 다루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고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일류 학자들 수천 명이 수년간 함께 연구한 결과, 그 가능성은 점점 실체화되었다. 결국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의 폭격연습장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이 성공리에 종료되었는데, 이 역사상 최초의 핵실험의 이름은 트리니티였으며, 사용된 폭탄의 이름은 가젯gadget이었다.

 

 

맨해튼 계획 Manhattan Project

 

↓맨해튼 계획의 일부인 시카고 파일 계획에 참여한 과학자들.

 

◆ 1939년 레오 실라르드가 주장

◆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 캐나다가 참여한 핵무기 개발 계획. 

◆ 단순 과학 실험이 아닌 미국 전쟁부(현 국방부)가 실전에 사용하기 위해 시작

◆ 대량살상무기를 제작할 목적으로 진행한 군사 작전

◆ 계획은 극비로 진행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쓴 편지에 의해서 프로젝트가 시작.

◆ 참고로 아인슈타인 본인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

◆ 미국은 세계 최초로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

◆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비용은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 대한민국 원으로 환산하면 약 30조 이상

◆ 당대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해롤드 애그뉴 등이 차출되었다.

 

 

폭탄

 

트리니티 실험에 사용될 핵무기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으로, 가젯(Gadget)이라는 코드명이 붙여졌다. 

플루토늄 핵폭탄은 주변을 둘러싼 재래식 폭약들이 아주 정확한 타이밍에 동시에 폭발하여 그 압력으로 중앙의 플루토늄을 강하게 압축시켜야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고, 따라서 주변의 폭약을 정확한 타이밍에 기폭시키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러한 설계의 결과로 가젯의 표면은 온갖 돌출부와 케이블, 기폭장치가 어지럽게 얽혀있는 기묘한 쇠공 같은 모습이 되었다.

 

↓7월 14일, 5시 29분 45초,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인공 핵 폭발이 일어났다.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TNT 20kt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측정. 버섯구름은 12km 높이까지 솟아올랐으며, 40km가 넘는 곳에서도 화구를 관측할 수 있었다. 240km 거리에 있던 사람도 태양과 같은 밝은 빛이 하늘을 환하게 물들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향

 

2차 대전 당시 압도적인 연합군의 전력과 그로 인한 연이은 패배, 경제 및 플랜트의 붕괴로 인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1%도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은 1억 총옥쇄, 반자이 어택, 카미카제 등 헛된 발악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시된 원자폭탄 투하를 통해 일본제국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상공에서 팻 맨(Fat Man)이 폭발한다.

 

이 사건은 일본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으나, 30만 명 안팎이라는 적은 규모의 피해만 입고 자신들의 제도를 보존한 채 전쟁을 종료하게 되었다. 괜히 오기부리다가 나라 하나 잿더미가 될 뻔하다가, 큰 손해는 면한 셈.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자였고, 맨해튼 계획과 몰락 작전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원자폭탄 투하의 소식을 들었기에 핵개발에 실질적으로 관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맨해튼 계획에 대해 상당히 자조적으로 평가했다.

이렇게 핵개발에 참여한 맨해튼 계획의 연구진 중에는 아인슈타인처럼 죄책감에 시달린 사람들도 있으나, 존 폰 노이만, 한스 베테,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만 등은 원폭투하에 대해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한 일이라고 평가하였다. 핵무기로 인한 조기 항복이 없는 상태, 핵무기의 존재 자체가 아예 없는 상태였다면 원폭 투하나 항복 없이 일본 본토를 공격하는 몰락 작전이 실행되었을 것이고, 자연히 전쟁이 길어져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전쟁범죄와 학살을 계속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몰락작전이 시행되면 핵무기가 없더라도 일본인도 더 많은 수가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 위의 평화


가장 강력한 전쟁 무기인 핵무기가 등장한 이후, 역설적으로 강대국끼리의 전면전은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적국을 공격하게 되면 자신도 멸망하게 되는, 전쟁을 시작하면 누구도 이득을 볼 수 없는 상호확증파괴가 대두되면서, 인류는 인류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힘의 공포로 인해 세계 대전과 같은 거대한 전쟁이 종식되고 계산된 평화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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