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Manhattan. 맨해튼 프로젝트(계획).

Manhattan

맨해튼
New York County 뉴욕 카운티

 

 

↓구기(區旗)

 

맨해튼은 미국 뉴욕주 뉴욕의 자치구 중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자치구로, 허드슨강에 있는 섬을 포함하여 본토의 몇 블록을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킨다.

 

 

 

↓맨해튼의 위성 이미지로, 중앙에는 센트럴 파크, 서쪽에는 허드슨 강, 북쪽에는 할렘 강, 동쪽에는 이스트 강이 있다.

 

↓1807년에 작성된 맨해튼의 1811년 위원회 계획의 최종판. 1811년에 채택되었다.

 

↓제임스 팔리 우체국 : 미국 우편 공사는 맨해튼에 우체국을 운영하고 있다. 제임스 팔리 우체국은 31번가와 33번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뉴욕의 주요 우체국. 우편물량의 감소로 2009년 5월 9일 24 시간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또한, 우편 공사는 Manhattan, NY라는 지명의 명칭보다 New York, New York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 국가 : 미국 - 뉴욕주, 뉴욕시

● 뉴욕의 중심부 : 뉴욕시 행정구역상 영역 중에 오리지널 뉴욕. 뉴욕 중의 뉴욕. 약칭은 NYC.

● 우편물에 'New York, NY'라고 주소가 적혀 있으면 주소지가 맨해튼

● 맨해튼(정확히는 미드타운)의 미국 우편번호는 10001

●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지역

● 면적 : 87.5㎢,실질적인 육지는 59

● 2019. 인구 : 1,628,706명. 뉴욕의 자치구 중에서 3번째로 인구가 많다
● 2019. 인구밀도 : 26,821.6명/㎢ ,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

 뉴욕주의 뉴욕군(New York County)과 동일한 영토를 가지고 있다

● 시간대 : UTC-5 서머타임 준수
● 한국과 시차 : -14시간(UTC -05:00)
● GDP : $6353억 (2019년)

● 미국의 군 중 가장 부유한 군 : 2005. 기준 1인당 소득은 100,000달러를 넘었다. 
● 구청장 : 민주당 - Gale Brewer
● 지방검사 : 민주당 - Cyrus Vance Jr.
● 지역번호 : 212, 646, 332, 917

● 인류 최초의 마천루를 가진 도시였다.

● 철저한 도시계획에 의거해서 만들어진 곳

● 맨해튼은 미국에서 상업적, 재정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장소

● 로어맨해튼에는 뉴욕 증권거래소와 NASDAQ이 있는 월 스트리트가 있다 : 뉴스, 잡지, 책과 같은 여러 대중 매체의 출판업자들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주요한 라디오, 텔레비전, 통신 회사들이 이곳에 기반을 두고 있다.

● 무려 1900년대 초에 이미 빌딩 숲을 갖고 있었고 마차 시절부터 교통 체증이 존재했다. 
 뉴욕과 교외에서 The City라고 하면 뉴욕시 전체가 아닌 맨해튼만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 이 단어를 쓰느냐 아니냐에 따라 뉴요커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다고 한다. 

 

 

맨해튼섬(Manhattan Island)

 

맨해튼섬(Manhattan Island)을 비롯해 루스벨트섬, 랜들스아일랜드, 워즈섬, 거버너스섬, 리버티섬, 밀 록, 엘리스섬 등을 포함하고 있다. 브롱크스와 밀접해있는 지역인 마블힐 역시 맨해튼의 일부이다.

맨해튼에는 유명한 랜드마크, 관광지, 박물관, 대학교가 많다. 또한 유엔 본부가 있는 곳이다. 맨해튼은 뉴욕과 뉴욕 대도시권의 중심지이며,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 결과, 뉴욕의 다른 자치구인 브루클린과 퀸스 지역 주민들은 맨해튼에 여행 가는 것을 종종 "도시로 간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맨해튼의 지반

 

대도시 이미지의 원형.

본래 맨해튼과 같은 하중도는 하천으로 인한 퇴적 지형이어서 기반이 약하기 마련인데, 예외로 맨해튼은 지반이 편암 지반이라 워낙 튼튼해서 고층건물을 쉽게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빙하기 시절, 빙하가 흙과 돌을 죄다 깎아버린 덕이 크다고.

 

 

XX의 맨해튼

대도시의 도심을 최대 번화가 및 중심지라는 뜻으로 부르기도 한다.

 

● 서울의 여의도

● 상하이의 루자쭈이나 와이탄

● 도쿄의 긴자 및 마루노우치, 오테마치

● 도시국가인 홍콩에서는 홍콩 섬이 맨해튼에 비유된다.

 

역사적 인구

연도 인구 ±%


● 1656 1,000 —    
● 1698 4,937 +393.7%
● 1712 5,841 +18.3%
● 1723 7,248 +24.1%
● 1731 8,622 +19.0%
● 1746 11,717 +35.9%
● 1756 13,040 +11.3%
● 1771 21,863 +67.7%
● 1786 23,614 +8.0%
● 1790 33,131 +40.3%
● 1800 60,489 +82.6%
● 1810 96,373 +59.3%
● 1820 123,706 +28.4%
● 1830 202,589 +63.8%
● 1840 312,710 +54.4%
● 1850 515,547 +64.9%
● 1860 813,669 +57.8%
● 1870 942,292 +15.8%
● 1880 1,164,674 +23.6%
● 1890 1,441,216 +23.7%
● 1900 1,850,093 +28.4%
● 1910 2,331,542 +26.0%
● 1920 2,284,103 −2.0%
● 1930 1,867,312 −18.2%
● 1940 1,889,924 +1.2%
● 1950 1,960,101 +3.7%
● 1960 1,698,281 −13.4%
● 1970 1,539,233 −9.4%
● 1980 1,428,285 −7.2%
● 1990 1,487,536 +4.1%
● 2000 1,537,195 +3.3%
● 2010 1,585,873 +3.2%
● 2019 1,628,706 +2.7%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부터 1972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였으며, 2001년 9월 11일부터 2012년 4월 29일까지 뉴욕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였다.

 

 

 

 

세계무역센터

 

 

↓360° Video, Manhattan, New York, USA, 4K aerial video AirPano VR

 

 

 

 

↓1909년에 완공된 싱어 빌딩

 

↓1930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건설중인 노동자. 뒤에는 크라이슬러 빌딩이 있다.

 

↓왼쪽에서부터 엘리스섬의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세계 무역 센터 : 테러가 있기 전 2001.05.

 

 

맨해튼 계획

Manhattan Project

맨해튼 계획 또는 맨해튼 프로젝트

활동기간 : 1942.08.13 ~ 1947.08.15.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공동으로 참여했던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은 인류 최초의 핵무기를 만들어냈다.

 

엄청난 힘을 가진 핵분열을 인간이 마음대로 다루는 것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고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일류 학자들 수천 명이 수년간 함께 연구한 결과, 그 가능성은 점점 실체화되었다.

 

「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
이제 우린 다 개새끼들이야.
케네스 베인브리지. 첫 원폭실험 후 자괴감에 휩싸이며 한 말.

 

「if I had foreseen Hiroshima and Nagasaki, I would have torn up my formula in 1905.
내가 만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었다면, 1905년에 쓴 공식을 찢었을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프로젝트 이름

 

프로젝트 이름만 맨해튼이고 실제 뉴욕의 맨해튼과는 상관없다.

프로젝트가 미국 전역에서 나누어 진행되었지만 그 중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름의 유래에는 2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미군 공병부가 맨해튼 거리에 있었다는 것과 더불어 맨해튼 기술국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연구진들이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 과학관에서 연구를 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엔리코 페르미가 주도한 원자로 실험은 대학의 라켓볼 코트에서 이루어졌다.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위장하기 좋았다고.

 

 

기밀 프로젝트

 

맨해튼 프로젝트는 모든 것이 기밀이었으며 약 30군데의 시설에서 연구를 진행했는데, 미국, 캐나다, 영국 대학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중추적인 곳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곳들이 있다.

 

참여한 학자와 인물

20세기 물리학 올스타팀

 

●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 물리학자. 핵물리학

 

● 닐스 보어 : 물리학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엔리코 페르미 : 물리학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존 폰 노이만 : 수학자

 

●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 물리학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워낙 기라성같은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사실 맨해튼 계획은 기본적으로 2차대전 당시의 미국 전쟁성이 진행시킨 '군사작전' 이었다. 맨해튼 계획의 총 책임자는 미 육군 소장 레슬리 그로브스. 프로젝트 시작시점에 대령에서 준장으로 승진했고 이후 프로젝트 진행중에 소장을 달았다. 이 때문에 많은 문헌에는 그로브스 소장으로 등장한다.

 

↓1940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회동 중인 어니스트 로렌스, 아서 콤프턴, 배너버 부시, 제임스 코넌트, 칼 캄프턴, 알프레드 리 루미스

 

↓1946.05.01. 당시 맨해튼 계획 조직도

 

 

트리니티 실험

 

트리니티Trinity는 인류 최초의 핵실험에 사용된 핵무기 코드네임이다.

 

1945.07.16. 미국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 인근에서 실험이 실시되었다. 사용된 폭탄은 플루토늄 폭탄으로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던 팻 맨과 같은 종류. TNT 20 킬로톤 규모의 폭탄이다.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이 성공리에 종료되었는데, 이 역사상 최초의 핵실험의 이름은 트리니티였으며, 사용된 폭탄의 이름은 가젯(gadget)이었다.

 

폭발 0.016초 후의 사진

 

↓최초의 핵폭탄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으로 생긴 버섯구름.

Famous color photograph of the "Trinity" shot, the first nuclear test explosion.

 

1945. 트리니티 실험 현장을 다시 찾은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레슬리 그로브스. 낙진 때문에 흰색 방제화를 신고 있다

 

과정

 

1939. 실라르드 레오(Szilárd Leó)가 주장했다.

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쓴 편지에 의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13만 명 규모까지 성장했다.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비용은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 2017년 기준으로 따지면 255억 2천만 달러, 즉 대한민국 원으로 환산하면 약 29조 3,480억 원으로 2010년경 한국 국방예산과 맞먹는 거액이 들어간 거대 공학 프로젝트이다.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장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시작으로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등 전 세계에서 긁어모은 당대 최고의 두뇌들을 모두 여기에 동원했다. 참고로 아인슈타인 본인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우라늄의 유통을 중단하면서, 미국은 독일이 핵무기의 개발을 시작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이 작전을 허가하였고, 루스벨트 사망 후 대통령이 된 해리 S. 트루먼은 이 프로젝트를 알자마자 최대한 빨리 핵폭탄 개발을 완료할 것을 촉구했으며 '나치 독일로부터 미국과 유럽을 지키기 위해'라는 목적으로 예산이 무한정 지원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

 

원자폭탄 투하

 

2차 대전 당시 압도적인 연합군의 전력과 그로 인한 연이은 패배, 경제 및 플랜트의 붕괴로 인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1%도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은 1억 총옥쇄, 반자이 어택, 카미카제 등 헛된 발악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시된 원자폭탄 투하를 통해 일본제국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되었다. 

 

이렇게 핵개발에 참여한 맨해튼 계획의 연구진 중에는 아인슈타인처럼 죄책감에 시달린 사람들도 있으나, 존 폰 노이만, 한스 베테,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만 등은 원폭투하에 대해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한 일이라고 평가하였다.

 

핵무기로 인한 조기 항복이 없는 상태, 핵무기의 존재 자체가 아예 없는 상태였다면 원폭 투하나 항복 없이 일본 본토를 공격하는 몰락 작전이 실행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비록 핵무기가 없더라도 수많은 일본인이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 본토에서 일어난 6.25 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만 10~20%에 달하는 희생이 있었던 점을 본다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Mushroom cloud above Nagasaki after atomic bombing on August 9, 1945. Taken from the north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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